문화관광충무공 이순신 백의종군 숭모회

        단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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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계에 관한 문헌 기록(요지)

         단계현(丹溪縣)은 원래 신라의 적촌현(赤村縣)이다. 경덕왕이 757년에 단읍(丹邑)으로 고쳐서 월성군의 관할 아래 현(縣)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기 995년 성종(14)이 지금의 명칭인 단계현(丹溪縣)으로 고쳤다. 조선 초기 1432년 세종(14)이 단계현과 강성현(江城縣)을 합하여 단성현(丹城縣)으로 하고, 단계 지역은 법물면으로 했다. 1914년 일제가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법물면을 신등면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 『삼국사기』, 『고려사』, 『신동국여지승람』 등

        단계 지명의 유래

         문헌 기록상 단계의 최초 지명은 적촌(赤村)이다. 적촌 이전의 지명이 무엇일까? 적촌은 한자식 지명이다. 한자는 5-6세기에 본격 유입되었다. 그리고 적촌이 ‘붉은 마을(고을)’이라는 뜻이므로, 한자가 유입되기 전의 본래 지명은 ‘붉 마을’ 혹은 ‘붉 고을’ 등으로 추측할 수 있다. 신라는 경덕왕이 757년 12월부터 지방의 주·군·현의 명칭을 모두 한자식 지명으로 바꾸었다. 그때 적촌현(赤村縣)을 단읍현((丹邑縣)으로 개칭했다. 단읍 역시 ‘붉은 마을(고을)’이라는 뜻이다.

         한편 995년에 단계현이 생겨났다. 따라서 단계라는 지명은 현재 약 1,070년의 역사를 가진 이름이다. 또 단계의 단(丹)은 단읍현으로부터 시작하므로, 현재 약 1,170년의 역사를 가진다. 물론 적촌으로까지 올라가면 단계는 약 1,500년 전부터 ‘붉은 마을(고을)’을 뜻하는 한자식 이름으로 불린 유서 깊은 역사를 가진다.

         적촌(赤村), 단읍(丹邑), 단계(丹溪)는 모두 ‘붉음’을 바탕과 상징으로 하는 지명이다. 왜 ‘붉음’이 지명의 바탕이 될까? 이것은 단계마을의 토층 기반이 적색 사암(붉은색 사암)인 탓으로 추측된다. 또한 붉은색 사암은 쇠가 묻혀있다는 둔철산(屯鐵山), 가야 시대에 이름난 철 생산지인 척지(尺旨), 철수(鐵水) 등의 지명과 연관이 있다. 이 지역의 풍부한 철분이 오랜 세월 동안 산화되어 붉은색 사암을 형성한 것이다.

         단계(丹溪)는 ‘붉은 시내(개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고려 초에 왜 단읍(丹邑)을 단계(丹溪)로, 즉 ‘붉은 마을’을 ‘붉은 시내’로 이름을 바꾸었을까? 기록이 없어 까닭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단계 인근의 지명을 연계하여 보면 유력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 지명은 단계를 아래위로 한 원계(元溪), 사계(司溪), 단계(丹溪), 벽계(碧溪) 등이다. 이곳을 흐르는 시내는 단계천의 본류로 약 2.5km 구간에 ‘원계 → 사계 → 단계 → 벽계’로 연이어 있다. 왜 4개 지명을 계(溪)로 하여 연이어서 작명했을까?

         먼저 지명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보자. 첫 지명 원계(元溪)는 글자 그대로 시내가 최초로 시작한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단계천은 율현과 모례마을을 거쳐 원계에 이르러 다소 완만한 평지의 시내로 바뀌므로, 이를 두고 원계로 이름 지었다고 할 수 있다. 사계(司溪)는 사(司)가 (무엇을) 맡다, 살피다, 지키다 등의 뜻이므로, 이곳에서 시내가 비로소 멋진 모양새를 나타내는 것을 표현한 지명으로 볼 수 있다.

        단계(丹溪)는 붉은 시내라는 말이다. 오늘날 한국에 단계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현(縣)이었던 고을은 단계뿐이어서, 이곳의 단계가 가장 오래된 지명이라 할 것이다. 벽계(碧溪)은 푸른 시내라는 말이다. 이 용어는 황진이의 ‘청산리 벽계수(碧溪水)야“라는 시조로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다.

         다음 꼭 생각할 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단계 이름이 지어졌을 무렵의 자연 상황이다. 그때는 약 1,000년 이전의 고려 초기로 한반도 어느 곳이나 사람이 많이 살지 않고 원시림이 울창했다. 따라서 오늘날 원계와 모례마을 사이에 풍광 좋은 소나무 숲이 있듯이, 시냇가는 아직 개간되지 않은 원시림이 원계에서부터 벽계까지 이어져서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광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단계천의 물길이 지금과 같지 않았다. 지금의 물길은 1920년(경신년)의 대홍수로 인해 바뀐 물길이다. 홍수 이전은 단계천이 단계초등학교와 뒷산 사이로 흘렸다. 1970년대까지도 그곳에는 개울이 흘렸고, 뒷산의 절벽이 붉은 사암이어서 특히 가을철에는 붉은 단풍과 붉은색 절벽이 개울물과 어울려 절경을 뽐냈다.

         그렇다면 누가 이들 지명을 지었을까? 고려 초에 단계현으로 작명되었으니, 지명은 그 이전 신라 말 즈음에 어느 권위 있는 분(현감 혹은 이름난 문인)이 지었고, 사람들이 좋아하여 굳어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마 작명한 분은 이들 4개의 지명으로 시를 읊거나 글을 지었을 수 있다. 특히 4개 지명(원계, 사계, 단계, 벽계)은 기승전결을 이루고, 단계와 벽계는 붉음과 푸름이 극적으로 대치되어 어울림과 운율을 맛깔나게 한다.

         끝으로 정리하면, 단계천은 ”모례마을 숲을 지나 원계에서 아름다운 시내의 모양새를 갖추고, 사계에서 멋진 풍광을 형성하며, 단계에서 시내가 붉은빛으로 물들어 화려함을 더하고, 벽계에서 푸른빛의 시내가 되어 흐른다“라고 할 것이다. 앞으로 단계는 독립된 별개의 마을이기보다 원계, 사계, 벽계와 불가분으로 연계된 마을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이들 4개 마을을 한 덩어리로 보는 지혜를 공유하고, 멋지고 아름다운 단계천의 풍광을 되살리도록 힘써 나가야 한다.

        글쓴이 : 공창석(백의종군 숭모회 회장, 전 경남도 행정부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