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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군 신등면의 문화재 소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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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작성자 관리자 조회hit 35회 작성일 2024-07-22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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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산청 단계리 석조여래좌상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9호

        지 정 일: 1972.02.12

        소 재 지: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신등가회로10번길 17-9 (단계리 746-1)

        시 대: 고려시대

        불상이 있는 단계지방은 옛날부터 냇물이 넘쳐서 수해가 자주 일어나므로, 이를 막기 위하여 세운 고려시대의 불상이라고 전해온다. 마멸이 심하여 원 상태를 알기 어려운데, 얼굴 부분은 근처에 있던 것을 옮겨다 붙여 놓았다고 한다.

        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이 솟아있고 얼굴에는 살이 올라 양감이 풍부한 편이다. 신체는 어깨가 넓고 각이 졌으며 무릎 폭 또한 비교적 넓다. 특히 가슴부분이 발달하여 건장한 체구를 표현하고 있으나, 아쉽게도 오른쪽 부분이 거의 떨어져 나갔다. 옷은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있으며 굵은 옷주름이 뚜렷하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무릎 위의 옷주름은 좌우로 각각 반원형의 곡선을 이루고 있다. 오른손은 떨어져 나가고 없으나 왼손에 약그릇 같은 것을 들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약사여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대좌는 꽃부리가 위로 향한 연꽃무늬를 새긴 상대와 연꽃을 엎어 놓은 모양의 무늬를 새긴 하대만이 남아 있다.

        평행선을 이루는 옷주름이라든지 연꽃대좌의 형태와 빈약한 무릎의 표현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5. 권도 동계문집 목판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3호

        지 정 일: 1983.08.12

        소 재 지: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신등가회로 45-3 (단계리 585)

        시 대: 조선시대

        이 책판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동계 권도(1575∼1644)의 시문을 모아 간행한 것이다.

        권도는 39세 때 가을 증광시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아가기 시작하였으며, 내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이 책판은 순조 9년(1809)에 간행하였고, 전부 8권으로 되어 있으며 서문은 임재 정종노가 썼고, 발문은 김굉이 썼다. 권1∼2에는 시, 권3에는 만, 시보다 산문성이 강한 글인 부 그리고 권4에는 교서, 소, 답사, 계사, 권5에는 서, 권6에는 잡서, 침, 책문, 표전, 전문, 권7에는 축문, 제문, 묘비에 적는 글인 묘갈, 명지, 행장, 권8에는 부록, 년보가 들어가 있다.

        이 책판에는 위와 같은 다양한 글들이 실려 있어서 당시 향촌사회의 모습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6. 산청 율곡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73호

        지 정 일: 2002.08.14

        소 재 지: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율곡사길 182 (율현리 1034)

        시 대: 조선시대

        산청 율곡사에 있는 나무로 만든 아미타삼존불좌상이다. 가운데 본존인 아미타여래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관음보살상이 배치되고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상이 자리하고 있다.

        삼존불의 크기는 1m 이상의 사람의 키만 한 불상으로서, 자세는 등을 세우고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의 반가부좌상으로 전체적으로 균형감 있는 모습이다.

        아미타여래상은 머리는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으며 정상계주와 중앙계주를 표현하였고, 나발의 표현이 촘촘한 편이다. 얼굴은 방형에 가깝고, 턱선을 비교적 둥글게 처리하였으며, 이목구비가 뚜렷하여 서로 조화를 이룬다. 짧은 목 아래로 세 개의 주름인 삼도를 뚜렷이 표현하였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은 두꺼운 대의를 입었고, 가슴 아래로 수평의 군의자락이 보인다. 옷주름은 어깨와 소매, 반가부좌한 발목 아래를 중심으로 간략히 표현되었고 그 흐름이 불신을 따라 매우 자연스럽다. 양손은 따로 만들어 끼웠고 제1지와 제3지를 맞대고 있는데 그 사이에 작은 구슬을 쥐고 있다. 오른팔은 구부려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한 채 어깨부위까지 들어올린 상태이고, 왼손은 반가부좌한 오른발 위에 얹고 있다.

        관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은 자세·손모양·얼굴·옷차림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본존인 아미타여래상과 공통적인 특징을 보인다. 단, 두 보살상은 장신구를 전혀 착용하지 않았으나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다. 얼굴 표현은 아미타여래상과 같고, 다만 본존불에 비해 조금 길고 갸름한 편이다. 옷차림은 대체적으로 본존불과 같으나, 관음보살상은 오른쪽 어깨에 반쯤 걸친 소위 반단형식이며, 등 쪽에는 왼쪽 어깨에서 넘어온 대의자락이 보이는데, 이러한 표현은 아미타여래상과 대세지보살상의 경우와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규모는 1m 이상의 비교적 큰 크기의 아미타삼존불좌상으로, 전체적으로 균형적이고 안정감 있는 조형성을 지니고 있다. 삼존불의 특징이 거의 일치하여 같은 시기에 동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복장 유물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조선전기에 제작된 작품이라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