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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군 신등면의 문화재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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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작성자 관리자 조회hit 8회 작성일 2024-07-2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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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산청 정취암 목조관음보살좌상

        종 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3호

        지 정 일: 2013.10.24

        소 재 지: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둔철산로 675-87 (양전리 927-2)

        시 대: 조선시대

        의상 조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정취암은 관음성지로 유명하며, 관음보살상을 모시는 원통보전에는 연화좌에 앉은 관음보살좌상이 단독으로 봉안되어 있다. 1996년에 개금하여 전체적인 상태는 양호하다.

        50㎝정도 크기의 이 상은 등으로부터 서서히 굽은 자세에 머리를 앞으로 약간 숙이고 있으며, 안정된 자세와 단아한 인상을 주는 작품이다. 머리에는 큰 화불이 있는 보관을 쓰고 있어 관음보살존상임을 알 수 있다.

        아미타인의 수인은 양손을 따로 따로 만들어 끼웠으며, 오른손과 왼손 모두 다리 위에서 살짝 들어 제1지와 제3지를 구부려 맞대고 있다. 네모진 얼굴은 턱과 양 볼이 볼록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이마로부터 밋밋하게 내려오는 눈, 둥근 콧등, 그리고 미소를 머금은 입술 등이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법의는 오른쪽 어깨에 내의를 입고 그 위에 다시 대의를 오른쪽 어깨에 살짝 걸쳤으며, 가슴 아래에 수평의 승각기는 납작한 꽃잎형으로 모양을 내었다. 하반신을 덮은 옷자락은 대좌를 살짝 덮었으며, 옷 주름은 큼직하고 끝이 둥글게 처리되어 있다. 또한 가운데 옷 주름은 S자형을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은 양식은 18세기에 활동한 조각승 상정의 작품 특징과 유사하며, 이 불상도 조선 후기 18세기경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8. 산청 장천리 도요지

        종 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23호

        지 정 일: 1974.12.28

        소 재 지: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장천로205번길 72-25 (장천리 97)

        시 대: 조선시대

        요지는 자기나 기와·그릇들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장천리 손항마을에서 2㎞ 떨어진 곳에 1호 가마터가 있고, 이곳에서 손항마을 쪽으로 1.5㎞ 정도 내려온 곳에 2호 가마터가 있다. 1호 가마터는 산사태로 전부 파괴되었고, 2호 가마터는 도로공사로 인해 가마터의 중심부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1, 2호 가마터에서 채집된 유물은 대접·접시·종지·병의 조각들로 그릇모양과 문양은 비슷하다. 그러나 자기를 만드는 바탕흙인 태토와 유약에 있어서 1호 가마터의 것이 2호 가마터에 비해 질이 떨어진다. 문양은 상감의 경우 버들, 모란당초, 오리, 국화무늬를 새긴 것이 있고, 인화문으로는 화판문 등이 있다.

        장천리 가마터는 고려 후기의 상감청자에서 조선 전기의 상감분청으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중요한 곳이다.

        9. 산청 평지리 은행나무

        종 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115호

        면 적: 높이 18m, 둘레 4.25m

        지 정 일: 1991.12.23

        소 재 지: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1295-8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산청 평지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8m, 둘레가 4.25m이다. 열매는 타원형인 반면에 씨는 둥근 점과, 나뭇가지가 뻗어있는 선이 다른 은행나무보다 둔한 점이 특징적이다.

        원래 이 은행나무는 마을 앞산에 있었는데, 조선초 두문동 72현 중의 한 사람인 김후가 이곳에 와서 마음과 행실을 바르게 하도록 심신을 닦던 중에 계시를 받아 마을 안 개울가에 나무를 옮겨 심었다고 한다. 나무를 옮겨 심은 후 마을이 태평하고 번창하게 되어 마을 사람들은 은행나무를 신성시여기며 보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