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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군 신등면의 문화재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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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 작성자 관리자 조회hit 26회 작성일 2024-07-2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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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산청 김후 묘

        종 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251호

        지 정 일: 2003.09.18

        소 재 지: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산40-6

        시 대: 조선시대

        모두 4단으로 이루어진 이 묘역에는 15∼18세기에 걸쳐 상산김씨 13대 후를 비롯한 모두 6기의 묘가 조성되어 있다. 이중 13대 후와 14대 장(張)의 묘는 방형분이고, 19대 경근과 25대 규한의 부인 평산신씨의 묘는 원분이다.

        가장 상단에 위치한 김후의 묘는 부인 장씨와 합장되어 하나의 봉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갑석의 각 모서리는 끝이 가볍게 들어 올려져 있어 탑의 옥개석을 연상케 한다.

        김후는 고려 말의 사람으로 포은 정몽주에게서 사사하였고, 정4품 직제학의 벼슬에 올랐으나,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에 은거한 72현 가운데 한 사람이다.

        6기의 묘 중 15세기의 묘는 방형분이고, 16세기 말 이후는 원분인데, 이것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걸쳐 유행하던 방형분의 종말과, 원분이 조성되기 시작하는 시점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또한 김후의 묘 면석에 새겨진 명문은 묘지의 성격을 띠는 것으로, 고인의 생전 행적과 이름, 본관, 자손관계, 묘의 조성연대와 위치 등이 기록되어 있다. 방형분의 면석에 연대나 이름이 새겨진 예가 있지만 대부분 후대에 가필한 것들임에 반해, 이것은 묘를 조성할 당시 새긴 점과 묘지의 구성내용을 모두 갖추고 있어 당대의 사료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1. 단계박씨 고가

        종 목: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4호

        지 정 일: 1983.08.12

        소 재 지: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신차로 546-8 (단계리 629-4)

        시 대: 조선시대

        조선 인조 8년(1630)에 지은 전통주택이다. 안채·사랑채·문간채가 ㄷ자형 평면구조를 보이는 우리나라 남부지역에 분포된 전형적인 부농의 가옥형태이다.

        안채는 폭이 좁고 길이가 긴 모습의 남향집이다. 부엌·큰방·대청·방이 배열되어 있는데 보수공사를 하면서 부엌과 큰방의 크기가 약간 변경되었다.

        안사랑채는 안채의 정면 오른쪽에 위치한 동향집이다. 방 2칸과 대청으로 이루어졌으며, 방 앞면에는 마루를 두고 대청의 뒷면에는 벽을 설치하였다. 대문방향인 옆면에는 문을 달고 앞면은 대문과 직접 마주 보이지 않으므로 개방시켜 놓았다.

        경상남도 지역의 중류 농가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12. 박해용 금관조복

        종 목 경상남도 민속문화재 제5호

        지 정 일: 1983.08.12

        소 재 지: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신차로 546-8 (단계리 629-4)

        시 대: 조선시대

        조선 후기의 문신인 박해용(1885∼?) 선생의 유품으로, 왕에게 아침문안을 드릴 때 입었던 조복 1벌을 비롯하여 제사지낼 때 입었던 제복, 평소 집무를 볼 때 입었던 관복 등 모두 13점에 이른다.

        조복을 갖출 때 입었던 적초의는 붉은 색깔의 웃옷으로, 길이 90㎝, 화장길이 92.5㎝, 품 50㎝, 소매통 59㎝이다. 뒤쪽 어깨선에서 조금 내려간 곳에 매듭단추 3개를 달아 뒤쪽에 내려뜨린 장식인 후수를 고정시킬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적초의 안에 입던 청초의는 전체적으로 푸른색이나 검은 천으로 선을 두르고 있으며, 길이 123㎝, 품 48㎝, 소매통 56㎝ 인데, 입기 편하도록 아래에 입는 치마와 붙여 놓았다. 대대와 후수도 서로 붙여 놓았는데, 대대는 붉은색과 흰색의 비단을 겹으로 만든 허리띠로, 길이는 81.5㎝, 너비 64㎝이고, 후수는 붉은색 비단에 구름과 학을 수놓은 것으로, 위쪽 옆으로 금고리 2개를 달아 놓았다.

        제복을 입을 때 머리에 썼던 금관은 경건함을 나타내기 위해 비녀 구멍둘레와 덩굴무늬가 있는 부분에만 금칠을 했을 뿐 나머지는 검정색을 띠고 있다.

        그 밖에 문무관들이 평상업무를 볼 때 머리에 썼던 사모와 지금의 두루마기와 같은 모습이나 깃이 둥글어 이름 붙여진 단령, 허리에 매던 각대, 신발과 검정 화양목으로 만들어 술을 내려뜨린 호패, 앞을 가리기 위해 비단으로 만든 사선 등이 남아 있다.

        모두 선생이 고종 31년(1894) 문과에 급제하고 승지로 재직할 때 입었던 것으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복식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